여름은 어느새 날아가 버렸고, 나뭇잎은 떨어지기 시작하며, 낮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여름 동안에는 향수를 뿌리고 싶은 마음이 덜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무더위와 습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디서나 풍기는 선크림 향 때문일 수도 있으며, 천연 원료인 경우가 많지만 광감작성이 있는 일부 원료 때문에 피부에 얼룩이 생길까 걱정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패션 트렌드와 함께 향수를 뿌리고 싶은 마음도 되살아납니다. 몸에 걸치는 옷이 더 늘어나면, 그 옷에도 아름다운 향기를 입히고 싶어지는 법입니다.
가을 향수에는 여전히 약간의 청량감을 기대하지만, 그와 함께 더 큰 편안함, 더 감싸 안아 주는 노트, 더 뚜렷한 시그니처, 그리고 잔향을 바라게 됩니다. 제스티하고 플로럴하며 햇살 같은 노트들과는 이제 작별입니다. 내년에 다시 만나요.
물론 늘 곁에 두어 온 향수, 곧 시그니처 향수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향수를 다시 꺼내기 전에, 변화를 향한 이 마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의미에서 전환기의 향수를 만나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지금부터 소개해 드릴 향수는 제가 마음에 담아 둔 것들로, 클래식 향수에서부터 “니치 향수”라고도 불리는 보다 컨피덴셜한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골랐습니다. 제가 추천하는 향수는 모두 우아하고 뿌리기 편하다고 생각하는 향수이며, 거의 전부 직접 시향해 보았습니다.

1. 무화과: 부드러운 전환
여름과의 아름다운 전환은 갓 벤 풀, 수액, 구겨진 나뭇잎의 향을 담은 그린 노트가 이끌어 줄 수 있습니다. 이 계열에는 푸르면서 동시에 과일 향이 나는, 가을에 매우 잘 어울리는 노트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무화과입니다.
천연 무화과 노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해석해야 하며, 조향사마다 조합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스테모네라고 불리는 그린 노트에 코코넛 같은 밀키한 노트를 겹치고, 그 위에 우디 노트인 샌달우드, 베티버 또는 시더를 더하는 식입니다.
무화과는 거의 모든 하우스에서 만나 볼 수 있는 노트입니다. 그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향수들을 소개합니다.
Un Jardin en Méditerranée (Hermès)
기나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이 향수는 Jean-Claude Ellena가 만들었습니다. 저는 운 좋게도 그가 Hermès에 들어가기 전, 그라스에서 그에게 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타고난 교육자적 재능이 있으며, 향수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집필했는데 하나같이 성공작이었습니다.
이 오 드 뚜왈렛은 무화과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지만, 섬세하고 매우 다채롭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튀니지의 무성한 정원을 떠올리게 합니다. 질리지 않는 향수이며, 저도 즐겨 뿌립니다.
Jean-Claude Ellena의 후임으로 Christine Nagel이 왔지만, 저는 그의 작품에 확실히 더 마음이 갑니다. 그는 Hermès의 프라이빗 컬렉션 Hermessences에서도, 경이로운 Terre d’Hermès를 포함한 클래식 라인에서도 오직 걸작만을 만들어 냈습니다.
노트: 시트러스, 무화과, 오렌지 블라썸, 복숭아, 사이프러스.
지속력: 좋음, 약 6시간. 옷에는 며칠이 지난 뒤에도 향이 남아 있습니다.

알아두세요: 신선함과 지속력을 겸비하고 자연에 바치는 찬가라는 공통점을 지닌 이 부문을 가장 먼저 연 곳은 Guerlain으로, 1999년의 Aqua Allegoria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이어서 2003년 Hermès의 Jardins, 2008년 Dior의 Escales, 2018년 Chanel의 Eaux가 등장했습니다.
Figuier Eden (Armani Privé)
무화과를 중심으로 한 매우 아름다운 향수로, 다채로우면서 신선하고 지속력도 뛰어납니다. 무화과의 푸르고 아삭한 느낌이 아이리스의 부드러움으로 순화되어 있습니다.
이 향수는 2012년, 현재 Hermès의 조향사인 Christine Nagel이 만들었습니다. Guerlain의 Élixirs Charnels 개발도 그녀와 함께했는데, 그녀가 Hermès에서 일하기 전의 일입니다.
우아하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함께 나눌 수 있는 향수입니다. 아주 과감한 향수는 아니지만, 상쾌하고 뿌리기 편합니다.
노트: 핑크 페퍼, 무화과, 차, 아이리스.
지속력: 보통, 4-5시간.
Dioriviera (Dior)
2023년 Francis Kurkdjian이 만든 이 향수는 남프랑스를 이야기합니다. 매우 기분 좋고 뿌리기 편한 향수입니다. 아쉬운 점은 조향사가 2013년 Roger & Gallet에서 조향한 Fleur de Figuier의 구성을 그대로 가져와, 스스로를 조금 베낀 모양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가 Dior에서 만든 향수들 가운데 진정으로 첫눈에 반한 향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Jasmin des Anges 오 드 퍼퓸 버전을 맡아 볼 날이 기다려집니다.
지속력: 보통, 약 4-5시간.

2. 시프레: 가을의 심장
기온이 정말로 내려가면, 시프레 향수가 이 계절을 훌륭하게 보여 줍니다.
“시프레”는 무슨 뜻일까요? 항상 우디한 향수로, 흔히 패출리가 들어가고, 때로는 모스(에버닐)와 라브다눔이 더해집니다. 이 노트들은 여러 방식으로 꾸며질 수 있는데, 시트러스로, 그리고 아주 자주 장미로 옷을 입습니다.
이 어코드의 비밀, 구성, 기원을 알고 싶으시다면 시프레에 관한 제 글을 읽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시프레에서는 가을 낙엽, 촉촉한 흙, 지의류, 나무 이끼, 훈연한 나무 향이 납니다. 깊고 신비로운 노트로, 캐시미어 숄을 두르고 벽난로 앞에서 좋은 차 한 잔과 함께 웅크리고 싶게 만듭니다.
향수 매장의 상담사들은 시프레를 고르는 여성과 남성에게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고 늘 말해 왔습니다. 바로 보통이 아닌 강한 개성입니다.
Rose Barbare (Guerlain, L’Art et la Matière)
장미로 옷을 입힌 시프레로, Francis Kurkdjian과 함께 개발했습니다.
저는 취향상 장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개 지나치게 있는 그대로이거나, 지나치게 밋밋하게 달콤하거나, 지나치게 빈티지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시가 있는 장미, 야생의 장미, 남성도 뿌릴 수 있는 장미를 원했습니다. 또한 과일 향이 감도는 시프레의 면모로, 시프레의 대표 주자인 Mitsouko에게 작은 윙크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Francis는 제 요청에 훌륭하게 응답했습니다. 걸작이지만 다소 빈티지하고 너무나 뚜렷한 개성이 있어 아주 확고한 성격이 아니면 소화하기 어려운 Mitsouko와 달리, 이 향수는 다가가기 쉬운 시프레입니다.
노트: 장미, 복숭아, 꿀, 패출리, 모스.
지속력: 매우 만족스러움, 피부에서는 약 6-7시간, 옷에서는 훨씬 더 오래.

Portrait of a Lady (Frédéric Malle)
제가 가장 아끼는 향수입니다. 제가 아는 가장 지속력이 좋은 향수 중 하나입니다. 제가 몹시 싫어하는 앰버 우디 노트가 들어 있다 해도, 저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시프레 계열로 분류되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제게는 패출리, 장미, 우디라는 시프레의 특징이 모두 들어 있는 향수입니다.
Frédéric Malle에는 보석 같은 향수가 많고, Portrait of a Lady는 그중 하나입니다. 구성과 존재감 모두 눈에 띄는 향수입니다. 압도적인 용량으로 쓰인 터키 장미가 패출리와 프랑킨센스의 침상 위에 놓여 있습니다. 시향지 위에서 며칠씩 지속되며 아름다운 잔향을 선사합니다.
기억에 남는 위대한 향수, 목소리를 높여 말하는 향수입니다. 현대적이고 뚜렷한 시그니처를 좋아하는 여성과 남성에게 권합니다. 이 향수를 만든 Dominique Ropion은 매우 훌륭한 조향사입니다.

31 Rue Cambon (Chanel, Les Exclusifs)
이름은 Coco Chanel이 1918년부터 사용해 온, 하우스의 전설적인 주소에 경의를 표한 것입니다.
Chanel 하우스의 조향사로 거의 40년간 일한 Jacques Polge가 만든 클래식하고 우아한 시프레입니다. 그의 아들 Olivier Polge가 뒤를 이었고, 저는 그와 함께 Guerlain에서 Cuir Beluga를 만들었습니다.
31 Rue Cambon은 복숭아 껍질 같은 효과를 내며, 아이리스의 파우더리한 노트가 더하는 매우 부드러운 면모가 있습니다. 시프레의 경계에 있는, 매우 유연한 향수입니다. 이 향수와 함께라면 어떤 위험도 감수할 필요가 없습니다. 품격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향수입니다.
노트: 일랑일랑, 재스민, 패출리, 시스투스, 아이리스.
지속력: 좋음, 7-8시간.

3. 아이리스: 겨울을 향하여
조금 더 부드럽고, 더 포근하고, 더 매트한 터치를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향수계의 스타를 소개합니다. 바로 아이리스입니다.
아이리스는 흔히 우디 노트와 함께 쓰이기 때문에 가을에 잘 어울리는 노트입니다. 다만 아이리스는 품종에 따라 식물학적으로 매우 다를 수 있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저는 피렌체나 중국에서 오는 아이리스 팔리다를 정말 좋아하지만, 이름만 아이리스일 뿐인 아이리스 게르마니카는 전혀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이리스는 향수 업계에서 가장 값비싼 원료 중 하나입니다. 아이리스 버터를 얻으려면 재배, 건조, 그리고 뿌리줄기를 손으로 일일이 벗겨 내는 작업까지 6년이 걸립니다. Guerlain이 L’Heure Bleue 2026을 위해 개발한 것과 같은 아이리스 팅크처는 3년이 걸립니다.
Infusion d’Iris (Prada)
절대적인 품격을 지닌 향수, 유일무이한 시그니처입니다. 제게는 향수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이리스 중 하나입니다. 위대한 향수의 면모를 모두 갖추었습니다. 독특하고, 지속력이 뛰어나며, 잔향은 한없이 섬세하고, 천 가지 향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 뒤에 있는 조향사는 Givaudan에서 일하는 Daniela Andrier입니다. 저는 그녀와 함께 Angélique Noire를 개발했는데, Guerlain의 L’Art et la Matière 컬렉션에서였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향수 브랜드를 론칭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막 들었습니다. 그녀는 재능이 있고 저는 그녀의 시그니처를 좋아하기에, 그 향수들을 만나 볼 날이 기다려집니다.
노트: 아이리스, 머스크, 오렌지 블라썸, 시더.
지속력: 7-8시간, 옷에서는 더 오래.

Iris Silver Mist (Serge Lutens)
Serge Lutens 씨는 엄밀히 말해 조향사가 아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꿈과 욕망을 표현해 줄 사람으로 Chris Sheldrake를 선택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마법 같은 듀오를 이루었습니다.
Chris는 또한 오랫동안 Chanel의 조향사로도 병행해서 일했습니다. 그토록 빛나는 재능을 지녀 앞에 나설 수도 있었을 텐데, 제가 아는 가장 겸손한 조향사입니다. 업계에서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하지 않은 조향사라니, 드문 일입니다.
Iris Silver Mist는 이번에는 Chris가 아니라 또 한 명의 위대한 조향사 Maurice Roucel이 조향했으며, 저는 Guerlain의 L’Instant, 그리고 Insolence를 개발하며 그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이제는 거의 거론되지 않는 것이 아쉽습니다. Salons du Palais-Royal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향수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리스는 가장 순수하면서 가장 날것인 아이리스일지도 모르지만(정말로 뿌리줄기 냄새가 납니다), 그럼에도 극도로 섬세하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순수한 아이리스 노트에 푹 빠진 분들이라면 이 기념비적인 향수를 놓치지 마십시오.
노트: 아이리스, 베티버, 시더, 프랑킨센스.
지속력: 매우 좋음, 6-8시간.
Misia (Chanel, Les Exclusifs)
Chanel에는 제가 좋아하지 않는 향수가 거의 없습니다.
Misia와 최근작인 Comète는 둘 다 Olivier Polge가 만든 파우더리한 향수입니다. Misia는 Coco Chanel의 친구 이름이고, 혜성은 하우스의 주얼리에 매우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입니다.
저는 두 향수 모두 좋아하지만, Comète는 확산력이 다소 약합니다. 수채화 같아서 존재감이 부족합니다. Misia는 바이올렛과 오리엔탈 어코드가 더 두드러져, Comète보다는 확실히 덜 모던합니다. Comète는 예쁘고 품질도 좋지만, 조금 아쉽습니다.
두 향수 모두 아이리스 노트가 분명하게 느껴지고, 저는 둘이 같은 결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장품 같은 노트, 곧 립스틱과 라이스 파우더입니다.
지속력: 좋음, 약 5시간.

4. 이번 가을 Sylvaine이 선택한 향수
제 마음의 향 계열은 오히려 바닐라, 머스크, 파우더리 쪽입니다. 요즘 스페인에서는 Un Jardin en Méditerranée를 뿌리고 있는데, 너무나 상쾌하고 뿌리기 편합니다.
좀 더 가끔씩은 아주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무화과 솔리노트 두 가지도 좋아합니다. L’Artisan Parfumeur의 Premier Figuier와 Diptyque의 Philosykos입니다.
그리고 날씨가 더 서늘해지면, 제 창작품 중 하나인 Florentina 또는 Prada의 Infusion d’Iris를 다시 꺼내 들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다른 사람에게서 맡는 것은 그토록 좋아하는 시프레가 제게는 너무 과감하고 너무 남성적입니다. 어쩌면 저는 그 향수들을 뿌리기에 충분히 강한 성격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5. 마무리하며
무화과나 무화과 잎을 바탕으로 한 향수는 뿌리기 편합니다. 이 노트는 즐겁고 활력을 주면서도 개성이 있습니다.
시프레는 무화과, 시트러스, 플로럴, 바닐라보다는 아마도 다가가기 어렵겠지만, 뿌리는 사람의 성격과 존재감을 돋보이게 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아이리스 역시 남들과 구별되고 싶어 하며 더욱 독특한 향수를 뿌리고 싶어 하는, 까다로운 여성과 남성들의 사랑을 받는 노트입니다.


